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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광주 민주화 운동, 계엄군, 12.12 군사 반란

by 레카블링 2024. 7. 25.

<1980>

영화 1980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비극적 역사를 다룬 작품입니다. 오늘은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인해 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는데 그당시 12.12 군사 반란 속 시대적 배경을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980 광주 민주화 운동

<1980> 영화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비극적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과 추억을 통해 그 당시의 암울한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철수네 가족은 광주에서 40년 전통의 낙지 짜장 중국집 '화평반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평화로운 일상은 1980년 5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 소식과 신군부의 쿠테타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지게 됩니다. 서울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이 전라도 광주로 번지게 되면서, 시민들의 항쟁은 무자비한 군대의 진압에 직면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철수 가족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려냅니다. 집을 떠난 첫째 아들이 빨갱이로 몰리게 되면서, 둘째 아들 상두는 군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고문의 여파로 다리를 절단하게 된 상두는 분노와 절망에 휩싸여 술에 의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한편, 상두의 예비 신부는 영문 모를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비극 속에서도 철수 가족은 광주 시민들과 함께 무장 투쟁에 나서게 됩니다. 철수 아빠와 삼촌도 무장에 참여하고 마을 총장도 무기를 들게 됩니다. 5월 26일 새벽, 도청에서 최후의 항전이 펼쳐지게 되는데 철수 가족 모두가 이 마지막 저항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끝내 무자비한 폭격으로 사망하게 되고 맙니다. 이처럼 영화 <1980>은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비극을 생생하게 그려내 주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삶과 추억을 통해 당시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며, 이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통해 그 역사의 무게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강승용 감독은 5.18 사태를 취재하면서 진실을 밝혀내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40년 동안 묻혀왔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영화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 이후 전두환 정권이 집권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민중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민주화 운동이 어떻게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는지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과거의 역사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던 작품인 것 같습니다. 

 

계엄군

영화 <1980>를 만든 감독 강승용은 이 영화를 통해 평범한 시민들이 갑작스럽게 닥치는 폭격과 야만 앞에 노출되어 희생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전했습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은 광주 시내에 있는 중국집 '화평반점'으로, 이곳의 가족들과 주변인들이 겪는 비극적 상황을 그려내었습니다. 당시 광주에서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인해 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는데, 이러한 폭력의 현장 속에서 평범한 시민들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감독은 피해자들의 내면적 고통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역사적 사건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이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코로나 시국 속에서 제작비 확보가 쉽지 않았으며 홍보비 부족으로 인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시사회 장소를 마련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했기 때문에 손익분기점도 30만 명 수준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이는 최근 몇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한국 영화들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도 <1980>은 투자 대비 30만 명의 관객을 넘겼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록 관객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이 작품은 1979년 12.12 군사 반란 이후 대한민국이 겪은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1980>은 제작 과정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시민들이 겪은 비극을 잊지 않고자 했던 감독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12.12 군사 반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반란을 일으켜 군대를 장악하고 이듬해 5월 17일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쿠테타를 단행했었습니다. 이에 전남대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지만, 전두환 정권은 공수 부대를 투입해 무차별적으로 진압했습니다. 시위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폭행과 살인이 자행되면서 광주 시민들은 분노하여 일부 청년들을 중심으로 시민군을 결성했습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은 이들을 폭도로 몰아 진압했고, 언론을 장악해 계엄군의 만행을 감추고 오히려 김대중의 사주를 받은 공산 세력들이 일으킨 내란이라고 거짓 보도했습니다. 이후 재판을 통해 김대중의 내란 음모가 전두환 정권의 조작이었음이 밝혀졌지만, 당시 국내 언론의 왜곡된 보도와 달리 해외 언론에서는 전두환 신군부가 계엄령을 반대하는 광주 시민을 학살했다고 진실을 전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무차별 발포로 광주 민주화 투쟁은 일주일 만에 끝났지만, 이후 민주화 과정에서 5.18의 진상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희생자들에게 사죄하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쳤으며, 7년간의 독재 기간 동안 수많은 민주 학생을 간첩 조작 등으로 처형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과거사 조사와 법적 절차를 통해 전두환 정권의 만행이 드러났고, 1996년 전두환은 내란죄와 살인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이듬해 김영삼 대통령의 특사로 2년 만에 풀려났습니다. 이와 달리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독재 세력에 대한 엄중한 처벌로 역사 바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희생자들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화 인권 증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국가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노력을 잊지 않고, 역사적으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