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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나치 유대인 차별, 2차 세계대전, 호젠 펠트

by 레카블링 2024. 7. 21.

<피아니스트>

영화 피아니스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탄압과 바르샤바 점령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오늘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의 주인공 '블라디슬로프 슈필만'과 그를 구해준 '호젠 펠트' 장교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피아니스트 나치 유대인 차별

영화 <피아니스트>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의 참혹한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슈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전쟁 속에서 예술가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절망 그리고 생존을 위한 투쟁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영화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극에 달했던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를 배경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슈필만은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피아니스트로 성장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나치의 잔혹한 탄압 속에서 그는 가족들을 잃고 게토에 갇히게 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생존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슈필만이 겪었던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예술에 대한 갈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그가 연주한 쇼팽의 녹턴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한편 이 영화는 전쟁 중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균형 있게 그려내줍니다. 단순히 유대인을 희생양, 독일인을 전범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상황에서 각자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하는 인물들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복잡성과 비극성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처럼 <피아니스트>는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참상을 예술가의 시선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예술에 대한 갈망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작품은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으로 전세계에 평가받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 블라덱 슈필만은 힘든 이 시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나치가 바르샤바를 점령하면서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공공장소 출입이 제한되었고, 거리에는 곧곧마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슈필만 가족 또한 삶이 어려워졌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개입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연합군의 개입은 없었고,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탄압은 점점 더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나치는 바르샤바에 대규모 게토를 만들어 유대인들을 격리했고, 슈필만 가족도 그곳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나치의 만행은 계속되었고, 슈필만 가족은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슈필만은 자신의 피아노까지 팔아야 했습니다. 결국 슈필만 가족은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었지만, 유대인 경찰 이츠하크가 슈필만만 구출해 주었습니다. 홀로 살아남은 슈필만은 게토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도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숨어 지내다가 결국 발각되어 다시 도망치게 됩니다. 슈필만은 폐허가 된 병원에서 숨어 지냈지만, 독일군의 공격으로 다시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추위와 공복에 시달리며 폐허가 된 건물 다락방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나치 장교 호젠 펠트에게 발각되었지만, 호젠 펠트는 슈필만의 피아노 연주에 감동하여 그를 살려주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슈필만은 다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는 호젠 펠트가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그를 찾아갔지만, 결국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한 채 호젠 펠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영화는 슈필만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모습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일어난 참혹한 사건들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과 박해, 기아와 질병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던 주인공 슈필만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또한 나치 호젠 펠트의 인간적인 면모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과 인간의 본성을 잘 보여주며,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작품일 것 같습니다.

 

호젠 펠트

영화에 등장하는 독일군 호젠 펠트 장교는 평소 독일군의 잔혹한 행위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진심으로 반성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교사 출신으로 따뜻하고 지적인 성품을 지녔으며, 수많은 유대인과 폴란드인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1945년 소련군에 의해 붙잡혀 고문을 당한 뒤 후유증으로 1952년 그는 사망하게 됩니다. 이후 그의 이야기는 슈필만에 의해 전해졌으며 호젠 펠트는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유대인을 구한 의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 말살 정책을 펼치게 된 배경에는 당시 유럽 사회의 반유대주의적 성향과 그의 개인적인 경험, 정치적인 이유가 작용했습니다. 1929년 대공황으로 독일 경제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 히틀러는 민주주의를 내세워 정치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제와 언론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인들이 독일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히틀러의 개인사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미술 대학에 지원했지만 유대인 교수에 의해 탈락되었고, 이전에 성병을 옮긴 여성이 유대인 창녀였다는 경험 등으로 인해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이 형성되었습니다. 더불어 당시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에게 금지된 이자 놀음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구두쇠 기질이 강했다는 인식도 유럽인들의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강화시켰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회 전반에 퍼진 반유대주의는 히틀러가 유대인 말살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여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호젠 펠트 장교와 같은 선한 인물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용기가 희생정신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